2015년 8월 4일 화요일

뼈와 살을 넘어서 공명하는 심장박동

 우리 반은 운동을 못했다. 말만 들으면 농구로 축구로 세계 제패를 할 것 같은 녀석들이 체육대회 당일 날이 되니까 모두 허리를 다치기라도 했는지 다른 반 녀석들과 부딪힐 때마다 바닥을 벌레처럼 기어 다니느라 바빴다. 결국 농구에 참여했다가 1회전에 박살이 나버리고 운동장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운동장은 이렇게 요란한데, 우리는 할 일이 없다. 응원할 대상도, 뛰어다닐 경기도 없다.
 체육대회 날은 교실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지만 들키지 않으면 그만 이다. 교정을 멀리 빙 돌아 창문을 넘어 복도를 다시 넘어 교실로 들어선다. 백날 문을 잠그면 뭐하나, 창문은 열려 있는데.
 교실은 고요하다. 쳐진 커튼 너머로 요란한 운동장의 소리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적당히 켜놓은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이제는 나와 관계 없는 소리로 볼륨 낮춰 들려올 뿐이다.
 책상을 붙여 자려다가, 널찍해 보이는 교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으음…….”
 묵직하고도 푹신한 느낌에 눈을 뜬다. 검고 긴 머리카락의 폭포가 비춰진다. 고개를 똑바로 들어 위를 쳐다보니 여자아이의 얼굴이 있다. 얼마 전 학원에서 다른 여자애들한테 둘러 쌓여 있는 것을 도와 준 이후로 급히 친해진 아이다. 이 여자애는 반장이고 나는 부반장이자, 짝꿍이기도 했다. 본래 추첨을 통해 자리를 정하는 방식으로 짝이 아니었지만, 반장의 권한으로 짝이 되었다. 반장과 부반장은 같이 있는 것이 좋다나, 어쩐다나.
나보다 훨씬 큰 체격의 여자아이가 사지를 누르고 있으니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여자아이는 살며시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천천히 내려온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 촉촉히 젖은 입술의 틈새로 나오는 가슴 깊숙한 열기가 내 코 끝에 닿았을 때야, 나는 저항하는 한마디를 말했다.
 “저기, 뭐하고 있는거야?”
 “깼네.”
 “조금 전부터…….”
 고개 숙여 그늘진 여자아이의 얼굴은 표정 변화 없이 무덤덤하지만, 조금씩 붉게 상기되어가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여자아이는 덤덤히 말을 잇는다. 구차하게 변명을 지어내 본다.
 “너어, 체육대회날 교실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걸 몰라?”
 평소보다도 더 착 가라 앉은 국어책 읽기 목소리가 외려 더 당혹스러움을 담아내고 있었다. 내가 몸에 힘을 주어 꿈틀거려보았으나. 반장은 그 커다란 체구로 더 힘껏 짓눌렀다. 내 손목을 누르는 여자아이의 커다란 손바닥과, 하체 전체를 무릎으로 꾹 누르는 그 힘과 체중에 피가 통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힘 써도 소용없어. 너보다 내가 더 세. 아무튼, 반장으로서 용납 할 수 없어. 교탁 위에 올라와서 자는 꼴이라니, 네가 그러고도…….”
 “그러는 반장은 왜 여기에 들어 와 있는건데?”
 반박했다. 그대로 대화가 끊겼다. 여자아이는 마땅히 좋은 대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약간 빨라진 그 숨소리로 알 수 있다. 조금만 더 밀어 붙이면 부끄러움이 온몸을 덮쳐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교실을 비추던 햇빛이 그늘에 가려 사려진다. 친구들의 응원 소리가 창 밖으로 들려온다. 그 밖에 아무런 소리도 없다.
 “누구 있나?”
 언제 왔는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둘 다 뭐라 할 것도 없이 바로 교탁 아래로 몸을 날렸다. 쿠당탕. 여자아이가 먼저 내려가고 내가 그 나중에 딸리듯이 어설프게 내려갔다. 위치가 역전되어 내가 위로 올라왔다. 몸이 완전히 밀착되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창 밖으로 느껴지는 시선이 사라지고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서 사그라든다.
그제서야 나는 내 몸이 처해진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책상 아래 포개어진 우리의 몸이 뜨겁다. 여자아이의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그 심장의 떨림이 피부를 넘어 내 심장을 두들겨 움직이게 한다. 얇은 하계 교복을 두고 맞닿은 우리의 심장이 서로의 박동으로 공명한다. 그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낄수록 소리는 더욱 더 커지고 그 밖의 소리는 사라진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도, 바람에 파도 치는 나뭇잎 소리도 조심스럽게 작아져 소거된다.
 상체를 여자아이의 몸 위에서 천천히 떼어낸다. 눈을 마주친다. 여자아이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심장이 떨어졌음에도 두근두근 대는 떨림이 끈으로 연결된 듯 늘어져 느껴진다. 이 처음 느끼는 기묘한 벅찬 감정을 더 느껴 보고 싶다.
 누운 채 나를 향해 뻗는 그 팔을 거부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내 등을 감싸오며 안긴다. 천천히 나를 끌어 당기고, 우리는 말랑하고 축축한 입술을 서로의 입술로 짓뭉개며 체온을 교환한다.

 가능하면 체온이 식을 때까지 붙어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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